□ 산 행 일 시 / 2012.7.04일(수요일)
□ 참 가 인 원 / 나 홀로
□ 북한산성 14성문 종주 개념
14성문 종주란 북한산성 능선상의 14성문을 종주 하는 산행을 일컫는다.
북한산성 안의 성문은 모두 14개로
원효능선상에 시구문(서암문), 북문 등 2개의 성문이 있고
주능선상에는 위문(백운봉암문), 용암문(용암봉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등 6개의 성문이있고
의상능선 상에는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대서문 등 4개의 성문이 있다.
또한 계곡에 중성문과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대부분 능선상의 12성문만을 산행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4성문종주도 가능하다
●성문: 6문 : 1)대서문(大西門) 2)중성문(中城門) 3)대남문(大南門) 4)대성문(大成門)
5)대동문(大東門) 6)북문(北門)
●암문: 7문 : 1)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2)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3)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4)보국문(輔國門: 동암문東暗門) 5)용암문 (龍岩門:용암봉암문)
6)위문(衛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7)서암문(西暗門:시구문尸門)
●수문: 1문 : 1)수문(水門)<수문지>
□ 오늘의 산행 / 06시 50분 : 집 출발
07 시 40분 : 불광동역
08시 15분 :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 먹거리구매및 산행준비
08시 30분 :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 / 산행출발
08시 50분 : 대서문(1)
09시 20분 : 중성문 (2)
09시 45분 : 국녕사
10시 05분 : 가사당암문(3) / 의상능선진입
10시 25분 : 용출봉
10시 50분 : 용혈봉
11시 05분 : 증취봉
11시 10분 : 부왕동암문(4)
11시 25분 : 나월봉
11시 50분 : 나한봉
12시 00분 : 715봉
12시 10분 : 청수동암문(5)
12시 20분 : 대남문(6) / 산성주능선진입
12시 45분 : 대성문(7)
13시 10분 : 보국문(8)
13시 25분 : 대동문(9)
13시 35분 : 동장대
13시 45분 : 북한산대피소
13시 55분 : 용암문(10)
14시 15분 : 노적봉삼거리
14시 50분 : 위문(11)
15시 15분 : 백운대정상
16시 15분 : 원효봉갈림길
16시 30분 : 북문(12) / 원효능선진입
16시 45분 : 원효봉
17시 05분 : 원효암
17시 20분 : 서암문(시구문) (13)
17시 45분 : 수문지(문수문)(14)
18시 00분 :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 / 산행종료
19시 50분 : 집 도착
□ 산 행 시 간 / 9시간30분 (08:30~18:00)
□ 산 행 거 리 / 약 15.5km
□ 산 행 날 씨 / 하루종일 짙은 안개
□ 교 통 / 불광역에서 704번 시내버스 승차 북한산성 입구에서 하차(약 35분소요)
☆ 북한산14성문종주 유래 및 설명
북한산 성문순례는 근래 생겨난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10월28일자 동아일보에는 '북한산성 일순(一巡), 하이킹 코스 소개'라는 길고 자세한 기사가 실려 있다. 지금 북한산은 등반로가 너무 많이 생겨 문제지만, 당시만 해도 북한산은 '깊고' '험한' 산이어서
산성을 따라가는 게 거의 유일한 '환(環)종주'코스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산이란 이름은 북한산성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北漢)은 ‘한강 이북’이란 의미의 고유명사다. 따라서 ‘북한-산성(山城)’이지 ‘북한산-성’이 아니다.
북한산이란 이름은 숙종 당시에는 없었고 삼각산이라 불리다가 북한산성이 지어진 뒤 나온 이름이다.
북한산성이 지금처럼 정비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 돼서다. 이전에는 성문 하나, 산성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성문 기와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초석과 기단석은 흩어져 있었다.
이를 두고 신문들이 심심하면 사진과 함께 '조지는' 기사를 쓰곤 했다. 지금은 없어진 은평구 진관외동 기자촌에 사는 기자들이 휴일마다 북한산에 올랐으니 '북한산성 훼손' 기사가 툭하면 터져 나온 것이다.
참고로, 북한산 성곽과 성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아니라 문화재청에서 유지·보수를 하고 있다.
북한산성은 한양을 지키는 도성(都城)의 일부가 아니다.
유사시에 왕이 도성을 버리고 피란하는 행궁(行宮)을 지키기 위해 지어진 산성이다.
즉 정묘·병자 두 호란(胡亂)때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혼비백산하며 피해 농성(籠城)했던 경험에서 쌓은 성이다.
14성문 중 대성문은 여차하면 바로 경복궁에서 북악산을 거쳐 형제봉능선으로 넘어와 북한산 행궁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왕이 드나들 문이다 보니 대성문이 성문 중 가장 크다.
백제시대부터 산성을 쌓았다는 북한산성의 지금 모습은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완성됐다.
숙종·영조 때 인물로 북한산성을 쌓는 데 기여한 승려인 성능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는
"성문(城門)은 14개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 중 유실된 수문지(문수문)를 제외하고 13개가 남아 있다.
문루(門樓)가 있는 성문으로는 대서문 중성문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북문 등 6개,
암문(暗門)으로는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보국문 용암문 위문 서암문 등 7개가 있다.
'암문'은 후미진 곳에 만든 비상출입구로 문루가 없다.
들입목은 북한산성 입구에서 오르는 대서문(大西門)으로 하는 게 편하다.
대서문은 북한산성 4개 방위의 성문 중 서쪽을 대표하며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 경기도지사였던 최헌길의 주도로 복원됐고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산성 안의 북한동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애환이 깃든 성문이다.
중성문(中城門)은 북한동계곡길로 다시 20분 정도 올라가면 나타난다. 문루는 1998년에 복원된 것으로,
산성의 한가운데 있다 해서 '중(中)'자가 붙었지만,
북한산성 입구 쪽이 적이 공격하기가 쉬워 대서문과 함께 '두 번 지킨다'는 의미의 '중성문(重城門)'이라고도 전한다.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가사당(袈娑堂)암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5분 정도 되돌아 나와
국녕사(國寧寺) 입구 좁은 길로 들어서야 한다. 가파른 길을 20여분 오르면 의상능선상에 가사당암문이 보인다.
여기서 부왕동(扶旺洞)암문까지는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등 의상능선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자 '산성종주' 중에 가장 험한 코스이기도 하다.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에 있는 부왕동암문은 '북한지'에 소남문(小南門)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서 청수동암문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청수동암문은 비봉능선에서 넘어올 경우 거쳐야 하는 '깔딱고개' 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대남문(大南門)까지는 5분 정도면 도착한다. 문수봉 오른쪽에 있는 대남문은 예전에는 '문수봉암문'으로 불렸다.
대남문부터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한 위문(衛門)까지는
산성주능선으로 불리는 비교적 평탄한 길로 두 시간이면 넉넉히 주파할 수 있다.
제일 먼저 만나는 대성문(大成門)은 앞서 말한 대로 성문 가운데 가장 크다. 그다음
암문인 보국문(補國門)은 원래 동암문(東暗門)으로 불렸으나 그 아래 있는 사찰인 보국사의 이름을 따 보국문으로 바뀌었다.
대동문(大東門)은 동쪽 방위를 대표하는 큰 문으로 1993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어 용암문(龍岩門)은 북한산대피소 부근의 용암봉에 위치하며 옛적에는 '용암봉암문'으로 불렸다.
북한산성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위문'도 원래 이름은 '백운봉(白雲峯)암문'이었다.
암문 중에 유일하게 '위문'으로 불리는데, 일제강점기부터 그렇게 불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부터 대서문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20여분을 내려오다 상운사로 올라가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다시 20여분을 오르면 북문(北門)이 나온다.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안부에 있는 북문은 현재 문루가 유실된 상태다.
방위를 대표하는 네 개 문 중에 북문만 '대(大)'자를 앞에 붙이지 않았는데, 이는 원래 북쪽 방위를 홀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쓸쓸해 보인다.
여기서 원효봉을 넘어 20분 정도 내려가다가 서암문(西暗門)을 만난다. 시구문(屍軀門)으로 불리는데 산성에서 죽은 사람들을 이 문을 통해 내보냈다고 한다. 마지막은 수문(水門)으로 기록돼 있는 '수문지'로 1915년 8월 폭우로 완전히 유실됐다. [펌]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이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였던 최헌길 이라는 분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며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대서문에서 중성문으로 가는등로 옆 계곡에는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2)중성문(中城門)
원효봉(元曉峯)과 의상봉(義相峯)을 직선으로 그은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한 성문이다.
특이한 점은 문 이름에 가운데 중(中)자를 써 중성문(中城門)이지만 이곳에 쌓았던 중성(重城)은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는 것이다. 중(重)자는 "겹"이란 뜻도 있기 때문인데 북한산성에서 가장 수비가 취약한 부분인 대서문(大西門)방면의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서 안쪽에 쌓은 내성(內城)을 뜻하고 그 내성의 성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되었다
중성문 처마끝 사이로 안개에 묻힌 희미한 노적봉이 웅장하다
중성문에서 약 5분정도 되돌아나와 의상능선으로 가기위해 오른쪽 국녕사 방향으로 올라야한다
국녕사 대형불상이다. 잠시 배낭을벗고 약수물로 목을 축인다.
3)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 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령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어졌다.
※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 할 수 있도록 만든 문이다. 성안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 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이 통로를 사용했다한다.
안개속에 가야할 용출봉 용혈봉이 뿌엿게 보인다.
용출봉 오름길이다. 안개때문에 바위와 철난간이 미끄럽다. 오늘은 가능하면 우회길로 등로를 정해야겠다.
용출봉에서 뒤 돌아본 의상봉과 가사당암문 성벽이 보인다.
용출봉 철계단 아래 서편 암벽에
紫明海印臺(자명해인대)란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
자명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이오, 해인은 해인삼매(海印三昧)라
산은 붉게 단풍이 들어 곱고 흐르는 물은 맑으며
많이 깨우친 자가 학문을 관조함이 마치 바다에 만상이 비추인 것 같다란 뜻에서
유래된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란
"북한산의 산수경관의 아름다움을
마치 바다에 만상이 비추인 듯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란 뜻이라고 한다.
엄지바위라고도 하고 할미바위라고도 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방긋웃는 강아지바위이다.
보수나 증축을 하지않은 엣 그대로 성벽이다.
증취봉 등로에 위치한 투구바위이며 비올땐 많은 산님들이 저 아래에 대피할수있다
4)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 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 우기도 했다한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인다.
※ 홍예(虹霓)란 성문 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같이 반원형(半圓形)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
즉 홍예문(虹霓門)을 말한다.
나월봉에 올라서부터는 안개가 더욱 심하여진다.
뒤돌아본 용혈봉이 점점 안개에 덮인다. 이런 기상이면 아름다운 북한산의 조망은 포기하여야 할것같다.
나나한봉으로 향하는 바위오름길이 많이 미끄러워 조심히 올랐다.
5)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있다.
6)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었던 성문이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 해 있다.
이곳에서 구기동방향으로 하산할수있다
아줌마들의 휴식. 힘이드셨을게다.
오름길에서 뒤 돌아본 문수봉이다.
7)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이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 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 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 가 추측된다.
현판글씨는 숙종의 친필이다.
이곳에서 국민대방향으로 하산할수있다
※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북한산성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어졌다한다.
8)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곳에서 정릉방향으로 하산할수있다
불문봉(佛門峰) 통천문(通天門)이라고도 한다
대남문에서 대성문방향으로 성곽을 따라올라가면 바로 보현봉으로 뻗어내린 능선과 만난다.
다시 동쪽으로 성벽이 끊어진 곳이 보이고 거기에 암벽사이로 큰 돌이 얹혀져 있는 바위가 있다.
하늘로 뚫린듯한 구멍은 사람이 넉넉히 드나들만 하고 위에 얹힌 둥근 돌은 천신이 옮겨놓은 듯 신기하기만 하다.
이곳이 바로 불문봉이다.
일명 통천문(通天門)이라고도 하는데 바깥쪽은 수직의 아득한 절벽이다.
구멍을 통해 나가면 오른쪽으로 몸을 붙여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성벽위로 이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이 불문봉을 바라보면 동그랗게 파인 자국이 수없이 많다.
마치 알터가 촘촘히 박힌 알바위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가운데 녹물자국이 있고
어느 구멍은 녹이 슨 못이 그대로 박혀있다. 사실 이 바위는 알바위가 아니다.
북한산 도봉산도 6.25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고 비행기의 공습도 많이 받았다.
불문봉 바위도 총알이 박힌 각도로 보아 비행기의 기총소사를 받았던 것이며 그 때 박힌 촐탄이 아직도 녹물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노승대 지음, 웰빙여행-“신화를 삼킨 바위를 찾아” 중에서 인용]
저 멀리 안개속에 보현봉이 보인다.
대남문에서 대동문까지 약50분을 성벽따라 오름과 내림의 반복길이다. 무릎보호를 위해 스틱을 사용했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좌로는 팔당대교 우로는 국회의사당까지 도시경관이 볼만한데...
9)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수유리방향으로 하산할수있다
대동문 넓은 공터엔 평상시엔 산님들로 몹시도 분비는데 오늘은 기상탓인지 한산하다.
동장대[東將臺]
성의 동쪽에 장수가 올라가서 지휘하도록 높게 만들어진 곳으로써 14성문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장대란 장수의 지휘소로 성안의 지형이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이다.
성안 각 국문 별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를 두었는데 그중 동장대 규모가 제일 크고
성의 안 밖을 모두 살필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안내판 사진으로 지나온길을 바라본다.
대동문에서 용암문까지는 쉬어가는 등로길이다. 호흡을 다스리며 쉬엄쉬엄 성벽따라 걸어간다.
10)용암문(龍岩門)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에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다한다.
이곳에서 우이동방향으로 하산할수 있다.
위문으로 가는길의 너덜지대.
노적봉삼거리에서 위문까지는 암릉지대의 연속이다.
저 뒤가 노적봉의 암벽이 장관을 이루는데 오늘은 그저 온통 안개뿐이다.
11)위문(衛門)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봉과 만경봉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한다.
비록 안개때문에 시계가 제로이지만 여기 까지와서 백운대를 오르지 않으면 몹시 서운할것이므로
배낭을 고쳐매고 가죽 반장갑을 끼고 철난간을 잡으며 미끄러운 암반에 발을 내 딛는다.
이곳 또한 안내판 사진으로 만족하여야 하고.
한치앞도 내다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북한산정상 백운대인데 기념으로 한장...
북문으로 향하는 계곡 하산길에 늦은 점심을 김밥한줄로 ...
대동사 입구 갈림길.
상운사입구 갈림길이다.
위문에서 내림길을 진행하다 다시 북문.원효봉으로 오름길을 오르면서는 많이 지쳐간다.
무릎도 아파오고 디딤발에 힘도 없고 가져온 물도 바닥이 보이고...
12)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다.
방위를 대표하는 네 개 문 중에 북문만 '대(大)'자를 앞에 붙이지 않았는데, 이는 원래 북쪽 방위를 홀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쓸쓸해 보인다. 북문은 현재 문루가 유실된 상태다.
※ 문루(門樓)는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유사시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성 밖의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건축물이다.
북문에서 성곽을 따라 올라 원효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도 안내판으로 만족하고...
마지막까지 안전산행을 기원하고...
꽤 넓은 공터가 몰아쉰 숨을 확 트이게 한다. 근데 마지막까지 안개는 심술을 부리고 있다.
이제 약 한시간이면 끝이다.
13)시구문(尸柩門) 서암문(西暗門)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백성들에게 시구문(尸柩門)이라고 불리었으며,
이 이름이 원래 성문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여기에서 탐방로없음. 출입금지를 무시하고 왼쪽 풀숲으로 들어선다. 그래야 마지막 14성문인 수문으로 간다.
14)수문(水門)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에 높이 16척(5m)의
14성문중 가장 큰 규모의 수문(水門)으로 1915년 8월 을축년 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
성 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옆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만이
이 두 성곽 사이의 협곡에 웅장했던 수문(水門)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할 뿐이다.
※ 수문(水門)이란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水門)이라고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을 수구(水口)라 한다.
내려오는길에 우측으로 둘레길로 접어들어 뭉친근육을 풀어주려 잠시 걸어본다
탐방지원센터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는 좌우에는 전문 등산용품매장들이 즐비하다.
요 몬츄라 매장이 시기성 후배가 운영하는곳이라는데... 선뜻 들어갈수없는 고가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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